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스 빈트 (문단 편집) == 구식기체의 활약 == 그의 첫 격추는 전쟁 발발 3개월만인 9월 22일의 초계임무에서 소련의 복엽기인 I-15기를 격추한 것으로, 이후 일년간 그는 차근차근 격추 스코어를 추가해 가며 총 8기 격추[* 격추수가 적어 보일지는 몰라도 전쟁 초기 핀란드 공군의 공중전은 기본 수배에서 수십배에 달하는 적기 편대의 호위 전투기들을 뿌리치고 폭격기들 사이로 파고 들어 폭격을 방해하고 격추당하기 전에 냅다 도망치는 식이었다. 말 그대로 안죽는게 용한 싸움. 이런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공중전 임무를 수행하며 적기 격추까지 기록하고 살아 돌아왔다는 것만 해도 굇수 인증이다.]로 에이스로 인정받았고, 우수한 비행실력과 전과를 인정 받아 4기 편대의 편대장이 되었다. 한스 빈트의 스코어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 계기는 그가 편대장이 됨과 거의 동시에 그의 비행단이 소련과의 접경 지역으로 이동 배치되면서 불가피하게 여러 차례의 대규모 공중전에 뛰어들게 되어버린 것으로, 그 시작은 1942년 8월 18일 16대의 버팔로 전투기로 60여기의 소련 공군기와 대규모 공중전을 벌여 단 한대의 손실도 없이 16기의 소련 공군기를 격추[* 한스 빈트의 전과는 3기 격추.]한 것이다. 두달 뒤인 10월엔 I-16 전투기 8대로 이뤄진 편대에 혼자 뛰어들어 공중전을 벌인 끝에 1기 격추를 기록하기도 했고 43년 5월엔 하룻동안 3기의 IL-2 공격기를 격추하는 등 활약하며 꾸준히 스코어를 늘려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향상된 성능의 적기들을 버팔로에 타고 상대하며 힘겨운 전투를 치르면서도 격추 기록은 계속 이어졌고 43년 7월엔 33기 격추를 기록. 만네르하임 십자장을 서훈하며 대위로 진급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